현장체험학습을 멈춘 건 교사 아닌 시스템이다.
다시 뜨거워진 질문: “내년도 체험학습,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국 학교에서 진행 중인 내년도 교육계획 설문조사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단연 현장체험학습 운영 여부다. 코로나 이후 위축된 체험학습을 다시 정상화하자는 여론이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편, 교원단체는 교사의 교육적 판단을 바탕으로 하되,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겉보기에 단순한 운영 방식에 대한 논의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하고 무거운 쟁점이 자리하고 있다. 체험학습을 교육의 일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법적·제도적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포기할 것인가. 학교 현장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강원도 사건 이후, 교사들은 왜 체험학습을 두려워하는가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현장의 위축은 단순한 심리적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2022년 강원도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사망 사고는 이 문제의 구조적 본질을 드러냈다. 체험학습 중 교통사고로 학생이 사망했고, 해당 교사는 2심에서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심의 집행유예 2년에 비하면 감형되었지만, 유죄 판결은 교원 사회에 미친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사건 이후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오간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해도, 사고는 날 수 있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결국 교사 혼자 책임진다.” “20명이 넘는 아이를 단 한 명의 교사가 통제해야 하는 현실에서, 사고 없는 체험학습은 사실상 운에 맡겨야 한다.”
이러한 불안은 허상이 아니다. 교직은 교원 자격과 임용고시라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며, 일반 직업과는 달리 경력 전환이 쉽지 않다. 이처럼 법적 리스크가 높은 상황에서 교사에게 체험학습을 ‘가야만 하는 일’로 요구하는 것은, 소명감이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강요하는 구조나 다름없다.
매뉴얼만 두꺼워지고, 책임은 그대로 학교에 남는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사고 이후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을 한층 강화했다. 안전 지침과 사전답사, 이동 경로 점검, 사고 대처 매뉴얼이 세부적으로 정리됐고, 이를 어길 경우 책임 소재는 학교에 있다는 점을 사실상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매뉴얼이 오히려 불신과 회피를 낳는다고 말한다. “매뉴얼을 안 지키면 책임이 교사에게 돌아온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각종 체크리스트와 사전 보고 절차는 행정업무를 늘릴 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전 조치 미비’라는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더욱 기피하게 된다.
보조 인력 지원이 있다고 해도, 그 인력을 신청하고, 관리하고,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일은 고스란히 교사의 몫이다. 실질적인 지원 없이 형식적인 분담만 있는 셈이다. 결국 체험학습은 위험을 감수하는 교사의 개인 의지에 의존하는 활동이 되어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책임 배분’이다, 체험학습을 누가, 어디까지 책임지는가
지금의 체험학습 운영 구조를 요약하면 명확하다. 사전 점검과 예방 교육은 교사 책임, 이동 중 안전도 교사 책임,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역시 교사 개인에게 돌아간다. 이처럼 책임의 무게가 학교와 교사에게만 쏠린 구조에서는 어떤 열정도 체험학습을 지속시킬 수 없다. 이는 교육적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장체험학습이 지속 가능하려면 국가, 교육청, 체험처, 학교가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교육기관만이 책임을 지는 방식은 교육적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체험학습은 여전히 교육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서는 안 된다
현장체험학습은 여전히 교육적으로 깊은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은 교실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체험을 통해 감각적으로 배우고, 친구들과 협력하며 공동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교실 수업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경험의 폭이 체험학습을 통해 가능해진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적 책임과 행정 부담을 모두 학교와 교사에게 전가하는 구조에서는 교사에게 체험학습은 교육이 아닌 ‘위험’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의 배움이 현장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이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나는 체험학습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법적·제도적 보호장치의 실질적 보완이 시급하다.
최근 개정된 학교안전법은 교사 책임 완화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사고 발생 시 면책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라는 포괄적 표현에 머물러 있어, 실제 적용 과정에서 교사들은 여전히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 놓여 있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면책 기준을 법률·시행령·지침 수준에서 명확히 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체험학습을 운영할 수 있는 안전 인프라·보조 인력·전담 체계 등 지원 구조가 강화되지 않으면, 면책 조항만으로는 실효성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지자체·체험처·학교 간의 책임 분담 구조를 법제화하는 일이다. 사고 예방과 안전관리의 역할을 어느 기관이 어떤 수준까지 담당하는지 명확히 해야 사고 시 모든 부담이 학교와 교사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 개정이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적용 기준·업무 지침·현장 중심 매뉴얼을 정비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공공 인증 체험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현장체험학습의 안전성과 질은 결국 체험처의 구조와 운영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지금처럼 학교가 민간 체험처의 안전을 스스로 점검하고 판단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책임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청과 지자체는 민간 체험처까지 포함하는 공적 안전 인증제를 도입하여, 시설·인력·프로그램의 질과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 SW체험센터나 안전체험관처럼 이미 공공성이 확보된 기관뿐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민간 체험처도 평가를 통해 “안심 체험처”로 공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증 체계는 교사에게 과중한 사전답사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에게는 더 안전하고 질 높은 학습 경험을 제공하며, 지역사회에도 교육적 기반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행정업무 경감과 전문 인력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현장체험학습은 단순한 출석·체험 활동이 아니라, 사전 기획부터 안전 점검·문서 작성·보고·인력 관리까지 아우르는 복합 행정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 이 전체 흐름의 대부분이 교사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청·교육지원청 차원에서 체험학습 전담 코디네이터를 배치하거나, 체험학습 관련 업무를 일괄 지원하는 중앙·지역 단위 행정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보조 인력 운영이 단순히 ‘인력 배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력을 관리하고 보고하는 부담까지 학교에 떠넘기지 않도록 체계적인 운영 지원이 필요하다. 학교가 행정에 매몰되지 않고, 교사는 본연의 교육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체험학습의 질이 높아지고 안전도 강화할 수 있다.
체험학습의 회복은 교사를 다시 ‘교사답게’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학교가 행정 부담에서 벗어나고, 교사가 본연의 교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체험학습의 질은 높아지고 안전 역시 강화된다. 안전한 체험학습은 교사의 희생이나 의지에 기대는 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설계하고 지지해야 할 시스템의 문제다. 책임을 나누고 역할을 분명히 할 때, 아이들의 배움은 교실 밖에서도 확장될 수 있다. 이제는 교사가 두려움 없이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체험학습 정상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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