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청 하이러닝 홍보영상 사태가 드러낸 한국 AI 교육의 불편한 진실
경기교사노조, 임태희 경기교육감 고발

경기도교육청의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 홍보영상이 교사를 희화화했다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급기야 경기교사노동조합이 임태희 교육감을 모욕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단일 영상 콘텐츠가 형사고발 사태로 번진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번 사태는 ‘AI 교육 혁신’이라는 교육청의 서사와 교권 붕괴를 체감하고 있는 교실의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인공지능(AI)을 기반 교육 플랫폼 '하이러닝'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2023.9.13(경기도교육청 제공)
경기도교육청은 인공지능(AI)을 기반 교육 플랫폼 '하이러닝'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2023.9.13(경기도교육청 제공)

① 사건의 표면 — ‘2분 8초 영상’이 그린 교사의 얼굴

문제가 된 영상은 AI가 서·논술형 평가 채점을 돕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장면 구성은 교육 현장에 불쾌감을 넘어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교사의 학생 격려 → AI: “빈말입니다. 동공이 흔들렸습니다.”

쉬는 시간 회의 간다는 교사의 말 → AI: “거짓말입니다. 평소 화장실에 가는 시간입니다.”

즉, AI가 교사의 진심·전문성·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부정하는 존재로 설정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AI가 교사를 돕는 플랫폼 소개’가 아니라 ‘AI가 교사의 무능과 위선을 폭로하는 플롯’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② 현장의 분노 — “이제는 희화화마저 용인되는가”

경기교사노조가 단 4일 만에 643명의 형사고발 위임장을 모은 것은 상징적이다. 이번 고발은 감정 대응이 아니라 수년간 누적된 감정의 폭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몇 년간 경기교육청 소속 교사들의 인식 변화는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른다. ▶행정업무 증가는 경기교육청의 ‘교육 아닌 행정 중심’ 시스템 때문이다. ▶생활지도의 어려움은 경기교육청의 교권 보호 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경기교육청의 정책 변화가 현장 의견 반영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 ▶경기교육청은 AI 기반 정책을 교사의 보조가 아닌 ‘교사 대체’로 인식한다.

교사들은 이번 영상을 AI 교육정책의 오독된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으로 해석한다. 성남지역에서 근무하는 현장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마음을 기술적 개그 코드로 소비하는 순간, 교육의 인간적 가치는 사라집니다.”

경기교사노조,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고발([경기교사노조 제공)
경기교사노조,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고발([경기교사노조 제공)

③ 그 아래에 있는 구조 — ‘기술 중심주의’가 교육을 삼키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홍보 실패가 아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는 경기도교육청이 ‘기술 혁신은 교사의 전문성 위에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구조가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이 매우 우려된다. 이런 인식이 기반한 AI 교육정책의 구조적 흐름을 살펴보면, ▶AI·데이터 기반 학습 시스템의 무분별한 확장 ▶정책 설계에서 현장 의견 수렴 부족 ▶교사의 역할 변화 논의 없이 플랫폼 도입 ▶교사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 저하로 교권 붕괴 가속

교육사회학에서는 이를 ‘몰가치한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의 전형적 결과로 분석한다. 기술이 교육을 혁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교사의 존재·관계·감정노동을 ‘대체 가능·측정 가능·평가 가능’한 것으로 취급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하이러닝 홍보영상은 이러한 구조적 방향성이 무의식이 아니라 현실임을 시각화한 상징적 사례가 되어버렸다.

④ 정책의 역설 — ‘AI 혁신’이 오히려 AI 혐오를 낳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AI 플랫폼의 취지가 퇴색되고 현장의 거부감을 폭발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AI는 ‘교사의 파트너’ → ‘교사의 감시자·판단자’로 인식 ▶AI는 업무 지원 도구 → 전문성 침해 및 모욕 체험 ▶AI는 학습 질 향상 → 교육이 기술 소비 모델로 추락

교육청이 영상 비공개 전환과 사과문 게재를 했음에도 현장은 냉담하다. 이는 문제가 영상 한 편이 아니라 ‘정책 추진 방식 전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⑤ 향후 전망 — 갈등의 방향은 어디로 향할까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단순히 “사과의 진정성”이 아니다. 다음 단계는 AI 정책의 총체적 재설계 요구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갈등 변수는 크게 세 가지다.

▶형사고발 단순 종결 시 교사 반발 재점화 가능성 ▶제작 책임 소재 교육계 내부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 ▶AI 정책 ‘도입 속도’보다 ‘현장 신뢰 회복’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교육청의 사과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교사·학생·교육의 가치라는 본질을 중심에 되돌릴 수 있는가에 있다. 이번 사태가 남긴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AI는 교사의 일을 돕는 기술인가, 교사의 존재를 평가·대체하려는 기술인가?

교육정책이 AI 시대를 맞이해 나아가야 할 길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교사를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는 민주적·참여적 설계임을 이번 사태는 강렬하게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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