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만 (전)서울교육청 혁신미래교육 추진위원장
강신만 (전)서울교육청 혁신미래교육 추진위원장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1월 20일부터 연대 파업에 돌입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최저임금 이상의 기본급, 방학 중 무임금 해소, 명절휴가비 차별 개선,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 합리적 임금체계 마련 등이다. 이는 과도한 특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다. 학생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급식·돌봄·청소·상담이 이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뜨거운 조리실, 보이지 않는 위험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매일 수백 명의 학생들을 위해 뜨거운 조리실에서 고강도의 노동을 이어간다. 튀김과 볶음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조리 연기)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폐암 유발 발암물질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폐암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학교급식 노동자는 175명에 달한다. 환기 시설은 열악하고 대체 인력은 부족하다. 노동자가 지쳐 쓰러지는 급식실에서 질 높은 학교급식은 존재할 수 없다.

인력 부족과 구조적 모순

문제는 건강 위험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력 부족은 전국적으로 심각하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조리실무사 결원율은 전국 평균 3.2%였지만 서울과 제주에서는 10%를 넘었다. 근속연수도 줄어들고, 신규 채용은 미달이다. 결국 기존 인력의 과중한 노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학생들의 급식 안전까지 위협한다.

방학은 쉼이 아닌 불안

교육당국은 ‘실질적인 노동 없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예산 관리 측면에서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는 방학 중에도 살아 있는 공간이다. 시설 관리, 돌봄 교실, 지역사회 연계 등은 모두 필요한 업무이며, 노동자들이 충분히 맡을 수 있는 역할이다. 방학 중 대체 업무는 단순한 ‘급여 명분’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학교와 지역사회에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는 길이다.

새로운 교육과정, 상생의 길

해법은 방학을 단절의 시간이 아니라 확장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름학교·겨울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학습 보충, 예체능 활동, 도서관 개방, 심리 상담 등 돌봄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급식노동자는 영양 교육과 요리 체험 활동을 맡을 수 있고, 청소·상담·돌봄·시설 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방학 중 학생과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운영 주체의 명확화다. 방학 중 프로그램은 교사의 업무를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은 방학 동안 자기 연수와 연구, 수업 준비에 집중한다. 따라서 프로그램 운영은 지역교육청과 지자체가 기획·지원하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와 지역사회와 기관이 중심이 되어 실행하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교사의 전문성 개발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노동자의 생계 단절을 막고 학생·지역사회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공공성과 교육적 가치

학교는 단순히 수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지역사회와 연결된 공공의 장이다. 학교급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교육의 연장선이며, 건강과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공공 서비스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안정된 노동은 곧 안정된 학교를 만든다.

생태중심 교육사상에 기반을 둔 학교 운영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생태중심 교육사상의 실천이다. 학교를 살아 있는 생태계로 보고, 학생·노동자·지역사회가 서로 의존하며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방학 중에도 학교가 열려 있다면, 학생은 성장의 기회를 얻고, 지역사회는 돌봄과 복지의 혜택을 누리며, 노동자는 생계의 단절을 피할 수 있다. 이는 교육과 복지, 노동이 하나의 생태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위에서 가능하다.

지속가능한 교육의 길

방학이 노동자들에게 불안의 계절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과 기여의 계절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위기 상황을 개인의 희생이나 민간위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교육청과 지자체는 예산 논리의 벽을 넘어,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가 존중될 때, 학생들의 건강한 밥상과 안전한 교육도 지켜질 수 있다.

SNS 기사보내기

교육언론[창]은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참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월 1만 원의 후원으로 더 좋은 교육세상, 더 힘 있는 교육언론을 만들어 주세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육언론[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