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 이해 못하는 정치인 교육감에게 교사는 홍보의 소모품일 뿐
교육감의 중요한 책무는 교사가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전)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전)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흔들리는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중립성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교육이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권력의 향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교육 현장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가 무색하게도 고도의 정치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교육 현장에 대한 깊은 철학보다는 정치적 셈법과 치적 쌓기에 능한 ‘정치인 출신 교육감’들이 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논란들은 정치인이 교육의 수장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육의 본질인 학생 중심의 배움과 성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전시 행정’과 ‘이념 전쟁’, 그리고 ‘선심성 예산자치’만이 난무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

먼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경기도 내 다수의 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 유해 도서’라는 명목으로 폐기되거나 열람이 제한된 일이다. 문학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부조리를 탐구하며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도구다. 그러나 정치인 출신 교육감 체제 하의 행정은 문학적 가치를 교육적 맥락에서 판단하기보다, 보수 단체의 민원이나 특정 성(性) 관념에 기반한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데 급급했다.

정치인 교육감의 정치적 기반을 위한 교육행정의 폐해

이는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명백한 도서 검열이다. 교육감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의식해 도서 선정에 개입하거나 묵인하는 순간, 학교 도서관은 사상의 자유가 숨 쉬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 지식과 이념을 주입하거나 배제하는 지식 통제의 방편으로 전락한다. 다양성을 배워야 할 학생들이 정치적 잣대에 의해 재단된 ‘반쪽짜리 세상’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에서도 정치 공학적인 접근은 여실히 드러난다. 경기도교육청이 고3 학생들에게 운전면허 취득 비용을 지원하겠다며 무려 372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편성하려 했던 시도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여기에다 고등학생 수학여행경비를 위해 2025년도에 650억을 계획에 넣고서 학생 1인당 50만원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추가된다. 초등과 중학생에게는 지급하지 않고 오로지 고등학생들에게 지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학교 현장은 낡은 냉난방 시설, 부족한 급식비, 특수교육 보조 인력 부족 등으로 아우성치고 있다. 교육적 시급성을 따진다면 1000억원은 기초 학력 저하를 막거나 위기 학생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 교육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적 내실보다, 당장 유권자(혹은 예비 유권자)의 환심을 살 수 있는 ‘현금성 지원’이 더 매력적인 치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는 교육 예산을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자신의 다음 선거를 위한 ‘매표 자금’으로 유용하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감의 핵심 책무 중 하나는 교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된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 홍보 영상은 현장 교사들에게 깊은 모멸감을 안겼다. 해당 영상은 교사를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나 조롱의 대상으로 묘사하며, 교육청의 역점 사업을 돋보이게 하려 했다.

정치인 교육감에게 교사는 홍보의 소모품

이는 교육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정치인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교사는 함께 가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자신의 치적(하이러닝 도입)을 위해 개혁해야 할 대상이거나 홍보의 소모품일 뿐이다. 교권이 추락하고 교사들이 잇따라 현장을 떠나는 위기 상황에서, 수장이 앞장서서 교사를 희화화하는 행태는 교육 공동체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행위다.

또한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은폐 및 무마 의혹 또한 심각하다. 교육자라면 학교폭력 사건 앞에서 피해 학생의 치유와 가해 학생의 진정한 반성,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사건이 자신에게 미칠 ‘정치적 파장’을 먼저 계산한다.

사건이 공론화되어 자신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행정력 무능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으려 한다면, 이는 교육 행정이 아니라 범죄 옹호다. 정치적 리스크 관리에 능한 정치인 특유의 습성이 교육 현장에 적용될 때, 학교는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는 배움터가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고 만다.

물론 정치인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무능하거나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은 정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정치가 타협과 절충, 그리고 세력 간의 다툼을 통해 현재의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이라면, 교육은 원칙과 소신, 그리고 기다림을 통해 미래의 가치를 심는 과정이다.

정치논리가 교육논리를 압도하는 비극

이상에서 살펴본 경기도교육청의 사례는 정치 논리가 교육 논리를 압도할 때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4년 임기의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어 보여주기식 사업에 혈세 1000억 원을 낭비하고, 자신의 이념적 코드를 맞추기 위해 노벨상 작가의 책을 서가에서 들어내며, 홍보를 위해 스승을 조롱하는 교육감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겨놓은 형국이다.

이제 우리는 “교육감이 누가 되든 학교는 똑같다”라는 냉소를 거두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엄중하게 요구해야 한다. 아이들의 눈망울을 두려워하고, 선생님들의 땀방울을 존중하며, 정치적 유불리보다 교육적 올바름을 선택할 줄 아는 진정한 교육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교육을 정치의 늪에서 건져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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